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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곰브리치 서양 미술사 - 12~15장

by csk 2019. 2. 9.

12 현실성의 정복 (15세기 초)

  • 르네상스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고트족의 침입 후에도 700년이나 지나서 고딕 문화가 출현했고 고딕 후반에 변화가 가속된 결과로 출현한 것임. 그러나 북유럽에서 활발했던 고딕의 발전에서 소외되었던 이탈리아에서는 새롭고 혁신적이라고 느꼈을 것임.
  • 피렌체 두오모를 설계하고 구축한 브루넬레스키, 원근법을 회화에 적용한 마사초, 조각에 자연스러움을 추구한 도나텔로는 가까운 사이였음
  •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피치 예배당은 고딕을 버리고 로마의 건축의 아름다움을 되살린 의의가 있음.
  • 마사초는 원근법에 적합하도록 엄숙한 장면을 선택하여 인물을 조각상 처럼 묘사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 했음.
  • 이 시가의 북유럽에는 <예언자 다니엘과 이사야>를 조각한 클라우스 슬뤼테르, 제단화와 <아르놀피니의 약혼>으로 유명한 유화의 시조인 얀 반 에이크가 있음.
  • 이탈리아에서는 원근법과 신체에 대한 직접적 연구와 정확한 묘사를 통해 실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다면 북유럽에서는 눈에보이는 형태를 점점더 치밀하고 정확하게 표현해 나감으로써 같은 목적을 성취하려고 했음.
  • 콘라드 비츠의 <제자들로 하여금 고기를 잡게하신 기적>은 성화의 배경을 친숙한 호수로 자세하게 표현한 새로운 시도임.
  • 아래는 브루넬레스키가 기베르티와 청동문 조각 컨테스트에 냈던 작품 (좌:기베르티, 우:브루넬레스키)



13 전통과 혁신 I  (15세기 후반 이탈리아)

  • 시민과 상인들이 주축이 된 도시가 발전하면서 장인들의 길드가 생기고 유파가 발생하고 수준의 차이도 발생함.
  • 유명 건축가 알베르티는 로마의 건축의 많은 부분을 도시의 건축물에 적용했으나 고딕 기반에 살짝 변형하여 입혔다고  할 수 있음.
  • 프라 안젤리코는 피렌체의 산 마르코 수도원에 많은 성화를 남겼음. 마사초가 고민한 원근법과 신체의 사실적 표현을 충분히 이해했으나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성스러움을 차분하게 전달함.
  • 우첼로는 원근법에 과하게 몰입한 경우이나 고촐리는 국제고딕을 적절하게 지켜나가며 적용함.
  • 만테냐는 현재 작품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아쉽지만 마사초의 진정한 계승자라 할 수 있음.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원근법과 단축법 뿐 아니라 빛을 잘 표현하여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꿈>을 그려냄.
  • 사실적 묘사에서 어려워진 구도의 문제에 대해 폴라이우올로는 다소 딱딱한 배치로 답했다면 보티첼리는 <비너스의 탄생>에서 어떤 부분에서는 14세기로 돌아가기로  결정함으로써 여신 탄생 순간의 아름다움을 잡아냈음.   

14 전통과 혁신 II (15세기 북유럽)

  •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건축이 시작되었지만 북유럽은 한세기가 넘도록 고딕이 지속되며 수직양식, 플랑부아양(불꽃보양) 양식 등이 나타남.
  • 반 에이크의 뒤를이어 로흐너는 국제양식에 르네상스적 요소를 추가하기 시작함
  • 웨이든은 구도의 문제를 좁은 배경의 설정으로 해결하여 폴라이우올로의 고민을 넘어섬
  • 목판화가 발달하여 많은 정보가 전달되기 시작하였으나 정밀성이 부족하여 회화에는 부적절함. 대안으로 동판화가 등장하여 이탈리아의 발전된 회화양식이 북유럽으로 확실히 전파됨.

15 조화의 달성 (세기초 : 토스카나와 로마)

  • 늘어난 군소 궁정들이 명예를 얻기위해 작품을 요청하고 유명한 예술가가 이를 허락하는 식의 권력의 변화가 일어남
  • 율리우스 2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새로 짓기 위해 브라만테를 고용하고 많은 돈이 필요해 면죄부를 판매했고 이는 종교 개혁의 빌미가 됨
  • 레오나르도는 이해받지 못한 천재였으며 매우 다양한 분야에 뛰어난 연구수준을 보였음.모나리자에 보이는 스푸마토 기법은 무미건조하고 딱딱하지 않게 실존하는 사람의 인상을 전함.
  •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에서 복잡한 자세를 거침없이 표현함.
  • 라파엘로는 성모자로 유명한데 더할나위없는 안정적인 구도와 인물의 아름다움을 보여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