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를 변화시킨 책들

대성당 - 레이먼드 카버

by csk 2018. 1. 21.



삶의 찌질함에 대하여...

읽으면서 '화수분', '운수 좋은 날' 같은 한국 근대 단편 소설들이 떠올랐다. 우울한 삶의 면면을 갑자기 너무 가까이에서 보게돼 화들짝 놀랐다. 특히 첫번째 소설 '깃털'을 읽고는 잠시 어리둥절 했다. '이게 뭐야? 이게 끝인거야? 뭘 말하려고 하는거야?' 하며 혼란에 빠져서 평소라면 절대 안하는 남의 독후감을 찾아 읽는 행동까지 했으니까. 

삶이라는게 얼마나 기본적으로 우울한 건지, 행복과 불행을 구분짓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얼마만큼의 지난한 노력을 해야 평범한 삶을 꾸려갈 수 있는지, 그렇게 얻은 평범함이란 도대체 의미가 있기는 한 것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지며 작가는 집요하게 우리를 생각하게 만든다. ' 이사람 분명 어두운 삶을 살았을 꺼야' 했는데, 역시 19살에 이미 아빠가 되었고, 마약과 알콜중독으로 고통받다 단명했더라.

그 중 실낱같은 빛줄기도 있어서...

'별것 아닌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이라 번역된 'Small Good Thing'은 그 중 드물게 따뜻한 내용이다. 이동진 씨가  세월호 사고 당일, 한 팟캐스트에서 내내 이 소설을 조용히 읽어주었을 만큼, 정말로 힘든 누군가를 살며시 토닥여주는 위로의 힘이 있더라.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른 편 어디에서도 절망을 다루지는 않는다. 매일 남의 집 문을 두드려 비타민을 파는 아내는 더이상 이렇게는 팔기 어렵다는 걸 실감하고, 실직한 남편은 생활을 책임질 어떤 의지도 없이 소파와 일체가 되어가지만, 모든 상황은 있는 그대로 아주 조금씩 흘러갈 뿐 아직 끝은 아니기 때문이다. 


단편의 힘을 알게되었다.

단편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독자를 충격적인 어떤 상황 속으로 빛의 속도로 끌어다 놓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 독자를 두고 그냥 가버리는 그런 것이더라. 짧지만 너무 강렬해서 한 편을 읽을때마다 책을 덮고 조금씩 쉴 수밖에 없는 그런 힘있는 소설이었다. 단편을 더 많이 읽고 싶어졌다. 


추천여부 : 추천 

유사한 책 : 체호프 단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