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2019.06.02 15:51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리움의 콜렉션이 눈에 띄었다.

첫관람이었던 나에게 말을 걸어온 로스코와 자코메티의 작품에 대한 감상을 적어본다. 

마크 로스코 <무제> 

현대미술 전시 1층(가운데층)에 있는 작품이다. 이 그림을 보러 간건데 한참을 서있어도 아무 감정이 일어나지 않았다. 억지로 감동을 쥐어짤 이유는 없지만 못내 아쉬운 맘이 한가득인데, 하필 그림 옆에서 신입 직원을 교육하고 있는 통에 영 집중이 되질 않았다. 다 둘러보고 다시 돌아왔는데도 계속되고 있길래, 참다못해 이야기를 했는데 목소리만 줄여주더라. 절대 그 위치를 벗어나서는 안되는 규칙이라도 있는것처럼...

마크 로스코 <무제> 리움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는데, 어째 내가 본 작품인 아래 사진과는 좀 다르네.

한 점 밖에 없군 하며 돌아서려던 순간 불교미술전 사이에서 발견한 두번째 작품이다. 

그의 절망은 무겁지 않게 시작되어, 습관과도 같은 오래된 삶의 의지 위로 나풀나풀 떠오른다. 하지만 이내 모두 뒤덮고 가장자리만 남겨둔다. 모든 것이 끝나기 1초전 내려놓기 직전의 찰나를 그는 표현한 듯 하다. 소리없이 모든 것을 먹어버리는 블랙이 위험하다고 그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아니 그를 도와달라는 외침이었을까?  

불교 미술 파트에 로스코와 자코메티가 불상들과 함께 나란히 전시돼있다. 실제론 많이 어두워서 사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인데 작품들과 잘 어울린다.

큐레이터가 말하고자 하는 종교적 흐름이 무엇인지는 알것같다. 하지만 나는 자살 직전 로스코의 절망적인 블랙과 자코메티의 처절한 고독의 인간상이 해탈을 말하는 불상 사이에 놓여있는것이 꽤 어색하게 느껴졌다. 평화로운 광장의 군인행렬같은 생경함.

사진사의 위치 언저리가 로스코의 작품이 유리 조명 반사도 없이 보이고 고개만 돌리면 자코메티도 볼 수 있는 명당이다. 나도 그곳에서 한동안 발길을 떼지 못하고 왼쪽과 오른쪽만 번갈아 바라 보았다. 두 거장의 무거운 메시지를 읽으면 읽을수록 땅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만 같아 힘들게 발걸음을 떼고 일상으로 탈출한다. 가위눌림에서 벗어난 기분.   

알베르토 자코메티 <작업실에 앉아있는 디에고>

이탈리아 여행에서 만났던 자코메티 작품도 참 강렬했었던 기억이난다. 

로봇같은 인상의 남자가 의자에 앉아있다. 다리를 꼬고 있군 하며 다리를 보다가 다시 고개를 드는 순간 1미터는 더 멀어진 그의 얼굴을 보며 깜짝 놀란다. 너와 나는 이만큼의 거리라는 듯이 그는 멀어져 간다. 다리를 보다 머리를 보면 또 다시 1미터씩, 한 번도 아니고 반복적으로 그는 멀어진다. 상대를 아는 것이, 진심으로 내면을 이해하는 수준 따윈 집어치우고 그의 형태라도 파악하는것이 가능이냐 하냐고 나에게 다그친다. 

자코메티 <디에고 잔상>

고통과 좌절로 오롯이 알맹이만 남은 인간을 표현했기에 그의 인물과 무릎꿇은 자세는 너무도 잘 어울린다.  

자코메티 <거대한 여인>

여인이라고는 하지만 유방은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다. 성이라는 것이 삶의 무게 앞에서는 사치일 뿐이고 특히 여성의 몸은 풍요와 생명의 상징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뼈보다도 가늘어진 그녀의 몸이 인생이 무어냐고 묻고 있다. 

사실 전시실에서는 그녀의 그림자에 눈물이났다. 이 작품이 만들어졌을때도 이렇게 처연한 그림자가 있었겠지, 그 당시와 지금과 같은 것은 - 그러니까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 저 그림자가 아닐까 하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 오전에 들어가서 샌드위치 사먹은 시간까지 3시간 반이 넘도록 머물렀다. 작품도 좋았지만 공간도 참 좋았다. 담쟁이 덩굴의 검은 돌 벽면의 아름다움이 종종 작품보다 더 눈길을 끌었다. 한국미술도 공부해서 또 가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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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2019.05.20 00:13

감동 받은 작품 네 점에 대한 느낌을 적어본다. 

<더 큰 첨벙> 데이비드 호크니

첫 번째로 만난 대형 작품이다. 따뜻하고 밝은 색감을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하늘색에 가까운 풀장의 물과 분홍이 감도는 샌드 베이지 바닥 그리고 쨍한 하늘... 각각의 색상은 분명 밝은데 느낌은 이렇게 서늘할 수가 없다. '이건뭐지?' 싶어 한동안 그림앞을 떠날수가 없었다.  

호크니는 영국 출신이지만 캘리포니아의 찬란한 태양에 매료돼 정착했다고 한다. 그림에서 한 발 물러난 이방인으로써의 고독이 느껴진다. 찬란한 태양을 통 유리 밖에 두고 서늘한 에어콘 바람에 한기를 느끼는 그. 화가의 위치는 거기인 것이다. 투박하게 말끔한 아크릴 물감이 주는 색(으로 채워진)면 효과로 시간은 멈추고 소리는 빨려들어간 듯 모든 것이 멈춘 순간, 홀로 움직이는 물보라 마져 소리조차 없다. 

 

 

<클라크 부부와 퍼시> 데이비드 호크니

두 번째로 감동을 준 그림인데, 조금 무서웠다. 부부의 표정과 자세가 상당히 인위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함께 전시된 사전작업 스케치에서는 부인의 손 위치가 조금더 아래로 내려와 있고, 남편의 오른팔도 앞으로 내려와 훨씬 자연스러웠다. 부인의 한껏 올라간 손의 위치와 남편의 제껴진 어깨와 담배를 쥔 손이 화가를 외부인으로써 지나치리만큼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화가가 떠나고 이들이 돌아서며 테라스를 바라보는 순간의 얼굴은 어떤 표정일까 상상하게 되는건 나 뿐일까?

특히 부인의 표정이 슬픔에 마취된 듯, 영혼이 없는 듯 숨막히도록 어둡다. 이 부부에게 초대돼 여기있다면 함께 차만 마셔도 체할것 같다는 상상. 그 와중에 아름다운 꽃과 살가운 노랑의 책, 민트색 장신구가 있지만 이 모든 소품에는 생동감이 없다. 생물인 고양이마져 등을 돌린채 도자기와 같은  뒤태만 보여주어 한 몫 보탠다. 부인의 얼굴 위치 옆 벽에 걸린 세련된 액자에서는 금색의 날카로운 테두리에서 나오는 빛이 폭풍전의 고요함, 폭발 직전의 긴장상태를 암시한다. 

그럼에도 정말 눈물나게 아름다운 색감이다. 푸른빛과 베이지가 섞인 벽면과 민트, 노랑의 소품, 부부의 세련된 옷 색깔까지 아름답지 않은것이 없다! 열린 창밖의 밝은 햇살을 품은 공기의 색감은 또 어떻고... 슬프고 처연한데 이렇게 아름답게 그리다니, 엉엉 울고 싶은것을 일행이 없어서 억지로 참았다. 

 

<나의 부모님> 데이비드 호크니

역시 감동적이었던 세 번째 작품은 화가의 부모님을 담은 것이다. 곰브리치 책에 보면 어머니의 사진으로 만든 작품도 있던데, 어머니와 조금 더 친밀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어머니는 그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아버지는 무릎 위 책으로 시선을 떨구고 있다. 실제 그림을 자세히 보면 어머니의 눈빛에는 애정과 더불어 공허가 보인다. 나이가 들어 삶의 통제권과 기억마져 잃어가는 노인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공허 말이다. 아직은 아들을 인지하고 애정을 보내지만 그는 이미 그녀의 기억 속 아들이 아니다. 아버지는 아예 세상에 대한 기억의 고리를 잃고 다른 세상 속에서 자신과의 연결을 찾아내고자 애쓰고 있다. 잔뜩 구부린 그의 어깨와 들어올린 발꿈치가 그 일에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두 분 모두 단정한 차림으로 단정히 앉아 계시지만 그들의 삶은 점점 비워지고 있고 멀지않은 미래에 완전히 비워질 것이다. 

그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화가는 아름다운 튜울립을 두 분께 선물하고 풋풋한 연두색 서랍장에 보라색 카펫을 깔고 부드러운 색감의 나무 의자에 앉혀 드린다.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정물화가 샤르댕의 책이 놓여있는건 이 작품이 어떤 의미에서는 정물화임을 말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 마지막에 만난 그의 스튜디오를 형상화한 이 작품을 보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왠지 그가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이해할 수 있을것만 같다. 그는 소수자였고 외부인이었고 사람들의 슬픔와 고독을 절절히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래서 손에 닿을 듯 닿지않는 햇살이라도 변치 않고 있어주길 바랬다. 그 조각조각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모아 성을 만들고 그 안에 그는 산다. 피터팬 처럼 말이다. 

 

 

가야지 하고 있다가 막상 귀찮아져서 '난 현대미술 별로잖아' 하며 또 미루려고 했다. 개관 30분 전인데도 사람이 많던데, 얼떨결에 2등으로 관람해서 나름 쾌적하게 보긴 했다. 나올때 보니 첫 인파가 빠지는 11시쯤 오는것도 방법일것 같더라. 

소개한 첫 작품인 더 큰 첨벙을 보자마자 뭔가 불길하더니, 나의 부모님과 클라크 부부를 볼때는 울음을 참느라 힘들었다. 피카소와 고흐가 떠오르는 호텔 중정을 그린 작품과 왠지 모르게 친근한 그랜드 캐니언 작품들도 좋더라. 마지막 스튜디오 작품 앞에서 나는 할아버지를 마음으로 안아드렸다. '잘 사셨어요. 저에게 용기를 주셨어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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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2019.03.31 15:56

26 새로운 규범을 찾아서 (19세기 후반)

  • 존 러스킨과 윌리엄 모리스는 싸구려 대량 생산 제품 대신 아름답고 가치있는 수공예 제품이 부활하도록 노력함
  • 아르누보는 심미주의적이고 장식적인 경향의 예술운동을 말하며 건축에서의 빅토르 오르타가 대표적임
  • 현대미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폴 세잔은 웅대하면서도 평온한 분위기를 가진 푸생의 풍경화와 같은 예술을 목표로 삼아 질서와 필연 감각을 되찾으려 노력함
  • 조르 주 쇠라는 색체가 시각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탐구하여 점묘법을 만들었고 윤곽선을 지키기 위해 형태를 극도로 단순화 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감
  • 고흐는 그의 열정을 붓터치와 강렬한 색상에 담아 평범한 모든 사람의 마음에 기쁨과 위안을 줌
  • 주식 중매인이었던 고갱은 타히티의 원시적인 모습에 매료되어 형태의 윤곽을 단순화 하고 색면에 강렬한 색채를 거침없이 구사함
  • 로트랙은 포스터 비어즐리는 삽화로 유명
  • 보나르는 태피스트리처럼 캔버스 위에서 아른거리는 빛과 색채의 느낌을 표현

피에르 보나르 <식탁에서>

27 실험적 미술 (20세기 전반기)

  •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건물 내부의 기능을 중요시하면 외관은 완성될 것으로 보았는데 이는 발터 그로피우스의 바우하우스로 계승되었음
  • 아카데미 파 미술가의 화실을 장식했던 아폴론 벨베데레는 강렬한 표현성, 명쾌한 구성, 솔직하고 단순한 기법의 아프리카 원주민의 가면으로 대체됨
  • 표현주의자들은 인간의 고통, 가난, 폭력, 격정에 대해 아주 예민하게 느꼈기 때문에 미술에서 아름다움만 표현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하다고 생각
  • 같은 장소라도 기쁠때와 슬플때 다르게 느껴지는데 이를 고흐보다 더 깊게 연구한 화가는 뭉크임
  • 독일에서는 에밀 놀데를 중심으로 다리파가 결성되어 표현주의를 추종했고 포스터 수준의 강렬한 효과를 표현
  • 추상 미술을 시작시킨 칸딘스키는 진보와 과학의 가치를 싫어하고 순수한 정신성을 지닌 참신한 미술을 통해 세계를 제건하기를 바란 신비주의자였음
  • 야수파의 대표 마티즈는 눈앞의 장면을 장식적 패턴으로 변형
  • 입체파의 대표 피카소는 3차원의 입체를 2차원 평면에 표현하는 방식으로 사용되던 원근법에 대항하는 방식을 제안함
  • 현대 조각가 헨리 무어는 돌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내려고 노력하는 방법을 통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함
  • 앙리 루소는 세관원으로 미술을 배운적이 없는 일요 화가 였으나 그의 그림에는 힘차고 솔직하며 시적인 무언가가 있음
  • 현실 그 자체보다 더 현실적인 것을 추구하는 초현실주의자로는 르네 마그리트와 자코메티 등이 있음 

28 끝이 없는 이야기 (모더니즘의 승리)

  • 슈비터즈는 콜라주를 사용했고 다다이즘의 일원임
  • 뒤샹은 레디메이드 (기성품의 사용)로 유명
  • 추상 표현주의자이며 액션 페인팅의 대표인 잭슨 폴락은 물감을 흩뿌리는 방식으로 그림을 그림
  • 마리노 마리니의 말탄 사람은 공습때 이탈리아 농부가 도망치는 모습을 표현하여 불안과 독특한 비애를 표현하고 있음
  • 정물을 반복적으로 그린 모란디는 작업실의 물병과 단지들을 수없이 다른 각도로 그림
  • 사회에서 미술의 지위를 변화시키고 시류를 타게만든 요소
    1. 진보와 변화에 대한 개개인의 경험
    2. 과학 기술의 발전
    3. 과학 기술로 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
    4. 정신적 고뇌와 연결돼있다는 정신분석학적 해석
    5. 화상 또는 비평가의 역할
    6. 미술 교육
    7. 사진의 보급
    8. 금지된 미술이 존재하는 지역 (냉전 소련 등)
    9. 새로움의 추구
  • 사진술의 발달로 많은 미술가들이 사진을 사용했으며 데이비드 호크니의 어머니도 유명한 작품임
  • 미술 연구의 역사
    • 고전 유물 연구 시작은 르네상스임
    • 17세기 종교개혁의 반동으로 카타콤이 조직적으로 발굴됨
    • 18세기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매몰됐던 헤르클라네움과 폼페이가 발굴됨
    • 19세기초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은 이집트를 고고학자들에게 개방하여 상형문자 해독에 성공함
    • 그리스에 접근한 영국 엘긴 경, 고고학자 오스텐 레어드 등이 영국으로 유물을 반출
    • 19세기 후반 슐리만이 미케네 고분 발굴
    • 독일팀은 페르가몬의 제단을 발굴 해 베를린으로 가져감
    • 20세기초 크레타에서 에반스가 발굴한 크노소스 궁은 진위가 의심스러워 책에 넣지 않음 

크노소스 궁전 벽화 

후기

드디어 끝까지 다 왔다.

작년 여름에 아무것도 몰랐던 때보다 문장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의미있었다. 

함께 읽어준 친구들에게 감사. 

하지만 내년쯤 또한번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을만큼 좋은 책이다.  

Posted by csk
미술사2019.03.24 11:41

20 자연의 거울 (17세기 네덜란드)

  • 종교개혁후 개신교 지역인 네덜란드 북부에서는 성화금지의 풍조와 검약한 생활양식에 따라 화려한 바로크가 도입되지 않았고, 대신 초상화와 풍경화가 발달함
  • 프란스 할스는 네덜란드 최초의 초상화 거장으로 부드러운 분위기의 단체화 및 빠른시간에 자연스러운 포즈로 개인의 특징을 잘 표현한 초상화를 남김
  • 얀 반 호이엔은 클로드 로랭에 비해 실질적인 풍경의 '그림같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줌
  • 램브란트는 마무리는 화가가 결정하는 것이라며 거친 붓칠로 두는 지역도 있었으며, 어둠을 사용하였으나 강조하기 보다는 주제를 부드럽게 드러내는데 주력함. 인생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의 시선은 초상화 화가로써 성공적인 삶을 살게 했으나 말년에는 가난하게 삶을 마침
  • 발렘 칼프는 정물도 어엿한 그림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줌
  • 베르메르는 작품수도 적고 인생 면에서 그리 알려진 바가 없으나 부드러움과 세밀함을 통해 일상의 순간을 특별한 아름다움으로 바라보게 하는 놀라운 기술을 가짐

21 권력과 영광의 예술 I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이탈리아)  

  • 보로미니의 교회는 사각 탑위에 원형2층이 올라가는 등 자유로운 시도의 바로크 양식을 보여줌
  • 바로크 교회는 신도들을 압도할 아름다움을 제공하기 위해 건축가, 화가, 조각가를 소집했음
  • 교회의 화려한 천장화 등의 바로크 작품은 해당 장소를 벗어나면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에 교회안에서의 바로크가 완벽히 발전한 후에는 독립적인 예술로 발전하지 못했음
  • 베르니니는 순간의 표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데 능했고 <성 테레사의 환희>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얼굴 표정의 격렬함을 보여주었고, 고전적 흘러내리는 옷주름이 아닌 펄펄 날리는 모습으로 흥분과 움직임의 효과를 강조했음
  • 프란체스코 구아르디가 표현한 베네치아 풍경은 여행의 기념물로 사용되었고 점으로 표현한 곤돌라 사공은 이후의 (인상주의) 미술에 영향을 주게 되었음

22 권력과 영광의 예술 II (17세기 말과 18세기 초 :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 17세기 루이14세등 군주들은 자신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화려한 건축물을 세웠고 그 대표가 베르사이유 궁전이나 이 궁전이 바로크 양식인 것은 그 장식적인 세부 때문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규모 때문임
  • 멜크 수도원도 천국의 영광을 맛보게 해주려는 의도로 매우 화려하게 장식된 바로크 대표 건축물임
  • 앙투완 바토는 바로크와 로코코를 잇는 대표 화가이나 꿈과같은 일상의 완벽한 순간을 상상하고 이 덧없음의 슬픔이 묻어있게 표현한 풍경화로 유명함



23 이성의 시대 (18세기 : 영국과 프랑스)

  • 영국은 취향의 척도가 또한 이성의 척도였기때문에 바로크식 장식에 나타난 공상의 비약에 반대하여 절제된 형태로 건축했음
  • 풍속과가 호가스는 외국의 화가들에게만 의뢰하는 영국인들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음
  • 레이놀즈는 로마와 이탈리아 고전을 공부하고 체계를 세우는 화가로 영국 왕립미술원 초대 원장이었고 게인스버러는 특별히 고전을 배운적이 없는 타고난 화가였음
  • 장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뎅은 영국인의 일상을 그린 화가로 베르메르와 유사한 느낌이 있음
  • 프랑스에서는 장 앙투안 우동이 조각가로써 인기였으며 볼테르의 흉상으로 유명함

24 전통의 단절 (18세기 말과 19시기 초 : 영국 미국 및 프랑스)

  • 사람들이 양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건축 양식이 동시대에 시도 되었으며 고대 로마의 발굴 및 연국가 활성화 되자 고전에 충실하려는 신고전주의가 각광을 받게됨
  • 아카데미 미술이 중심이되어 많은 규칙과 가르침이 전해졌으나 이에대한 반작용도 동시에 발생하게 됨
  • 코플리는 국왕에게 대항하는 국회를, 다비드는 암살당한 혁명가 마라를 그리는 등 당시의 사건을 암시하거나 대상으로 하는 그림이 등장하기 시작함
  • 스페인의 고야는 개인적 환상을 그림위에 펼치는 자유를 누렸고, 이는 영국의 윌리엄 블레이크에게도 이어짐
  • 터너는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를 일생의 목표로 삼았으나 그 이상을 달성하였고 목표를 가지지않고 진실만을 추구한 컨스터블은 당시의 규칙들을 무시한 작품을 그렸음
  • 황량한 산의 모습을 동양화와도 같이 표현한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당대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터너와 컨스터블의 성취에 이르지 못했음 

25 끝없는 변혁 (19세기)

  • 런던 국회의사당은 시민의 자유가 중세에 쟁취되었다는 이유로 고딕풍으로 재건됨
  • 유럽 미술의 중심지는 15세기 피렌체 17세기 로마를 거쳐 19세기에는 파리에 안착함
  • 앵그르는 고전파로써 매끈한 아름다움을 표현했으나 외젠 들라크루아는 역동적이고 화려한 색채를 통해 낭만주의를 이끌었음
  • 컨스터블의 지도를 받은 바르비종파는 시골 농부의 삶을 표현했으며 대표 인물은 밀레임
  • 사실주의의 문을 연 쿠르베는 일체의 가식을 거부하고 진실을 표현하려 함
  • 영국에서는 라파엘로로 부터 시작된 '이상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그 이전의 '하느님께 정직했던' 장인들의 예술로 돌아가려는 라파엘전파가 등장하였으나 순수해 지고자한 그들의 노력은 자기모순적이어서 성공하지 못함
  • 마네는 인상파를 자처하진 않았으나 눈에 보이는 대로 외광 효과를 표현한 첫 화가임
  • 모네는 소재 앞에서만 그림을 그리고자 했고 르노와르와 함께 빛의 효과를 중요시 했으며 가장 인상주의적이었던 화가는 피사로 였음 
  • 인상주의를 이끈 역사적 사실은 사진 기술의 발달과 일본의 채색 목판화 (우키요에) 였음
  • 드가는 우키요에의 영향으로 파격적인 구도를 선보였으며 다양한 포즈의 발레하는 소녀들을 즐겨 그렸음
  • 미국에서 온 휘슬러는 터너와 라파엘전파에 호의적이었던 유명 비평가 러스킨과 격돌하여 예술적 감각만이 인생에서 진지하게 논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 '심미주의 운동'의 지도적 인물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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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2019.03.10 08:49

16 빛과 색채 (6세기 초 : 베네치와 북부 이탈리아)

    • 산 마르코 성당 도서관은 피렌체 출신 산소비노가 설계했는데 르네상스 양식을 화려한 해양도시의 분위기에 맞게 변형함
    • 피렌체 화가들이 소묘에 더 관심을 두었다면 베네치아 화가들은 색채에 집중함. 그림이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도 전에 부드럽고 다채로운 색채들이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줌.
    • 조르조네의 폭풍우는 색체와 빛을 사용하여 화면전체에 통일성을 부여한 신비로운 주제의 작품임.
    • 티치아노는 카를5세도 인정한 성공한 화가였으며 과감한 구도로 사람들을 놀라게함
    • 북부 이탈리아 작은 마을에서도 코레조가 색과 빛을 사용하여 형태에 균형을 주고 보는 사람의 시선을 일정한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다는 발견을 작품에 잘 드러내고 있음.

17 새로운 지식의 확산 (16세기 초 : 독일과 네덜란드)

  • 남유럽이 앞서나가게 된 것은 과학적 원근법의 발견, 아름다운 인체를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게한 해부학적 지식, 고전 시대 건축 형식에 관한 지식이었음
  • 독일 뒤러는 남유럽의 발전을 받아들여 자연스럽고 새로운 판화, 회화를 남겼고 귀족 이상의 대우를 받는 미술가가 되었음
  • 그뤼네발트는 진정한 고통을 강조하여 표현했으나 인물의 크기를 다르게 하는등 중세로 돌아간 면도 있음
  • 배경의 풍경이 세밀하고 아름다운 것을 넘어 풍경만으로 그림이 그려짐
  • 네덜란드의 보스는 지옥의 환경을 소름끼치게 묘사한 화가로 유명


18 미술의 위기 (16세기 후반 : 유럽)

  • 르네상스 거장의 수법만을 따라하는 시기를 매너리즘 시대라고 함
  • 이전의 관습을 무시하고 새로운 시도를 함으로써 대중이 한 예술가의 기발한 착상/창안에 열광하도록 만든사람은 미켈란젤로 임
  • 조각의 매너리즘은 첼리니의 소금그릇으로 화려하고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줌
  • 회화의 매너리즘은 코레조의 제자인 파르미자니노로 인체를 길게늘여 왜곡시킴
  • 16세기에 가장 뛰어난 화가는 틴토레토로 파격적인 구도와 명암으로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함. 성마르코의 유해를 발굴하는 장면이 유명. 마무리의 세심한 손질이 극적인 사실의 전달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서 신경쓰지 않기도 함.
  • 엘그레코는 매너리즘의 대표로 매우 현대적인 작품을 많이 남김
  • 독일의 한스 홀바인은 세밀한 기술을 발전시켜 초상화에서 큰 발자취를 남김. 종교개혁 후 신교의 영향으로 성화 수요가 없어지고 간신히 살아남게된 영역이 초상화 이기도함.
  • 피터 브뢰헬은 네덜란드의 풍속화의 기반을 마련함

19 발전하는 시각 세계 (17세기 전반기 : 카톨릭 교회권의 유럽)

  • 바로크는 기괴하다는 의미로 그리스 로마 양식에 심취한 이들이 다른 양식을 일컫던 데서 유래
  • 로마의 일제수 성당은 부분이 반복되는 기존 양식이 아닌 하나의 복합적 형태를 위한 조합으로 되어있음. 특히 소용돌이 형태의 사용은 바로크의 특징임.
  • 바로크 미술가로 유명한 사람은 자연스러운 미를 강조한 카라치와 자연주의자라 불렸던 빛을 강조한 화가 카라바조 였고 둘은 친구였음
  • 귀도 레니는 라파엘로에 심취했으며 당대에 라파엘로를 능가한다는 평을 받을 만큼 인기였지만 현재는 같은 이유로 낮은 평가를 받고 있음
  • 네덜란드 출신 루벤스는 다양한 소재를 화려하게 한 화면에 표현하는 특별한 기술을 가진 화가임. 안트웨르펜의 예수회교단, 플랑드르의 카톨릭 교 통치자들, 루이13세와 그의 교활한 어머니 마리아 데 메디치, 스페인 왕 필리페 3세, 영국와 찰스 1세 등의 주문을 받은 국제적 인물로 영국과 스페인을 화해시켜 '보수 동맹'을 맺게 하는 등의 정치적 역할도 담당함
  • 루벤스의 제자 반 다이크는 우울하고 차분한 느낌으로 초상화를 많이 남김
  • 스페인의 벨라스케즈는 여행하던 루벤스에게 로마로 가볼것을 권유받았고 거기서 많은것을 배움. 세밀한 묘사나 터치를 하지 않았지만 더욱 실감나게 그려진 표현은 19세기 인상주의자들을 열광하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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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2019.02.09 23:32

12 현실성의 정복 (15세기 초)

  • 르네상스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라 고트족의 침입 후에도 700년이나 지나서 고딕 문화가 출현했고 고딕 후반에 변화가 가속된 결과로 출현한 것임. 그러나 북유럽에서 활발했던 고딕의 발전에서 소외되었던 이탈리아에서는 새롭고 혁신적이라고 느꼈을 것임.
  • 피렌체 두오모를 설계하고 구축한 브루넬레스키, 원근법을 회화에 적용한 마사초, 조각에 자연스러움을 추구한 도나텔로는 가까운 사이였음
  •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피치 예배당은 고딕을 버리고 로마의 건축의 아름다움을 되살린 의의가 있음.
  • 마사초는 원근법에 적합하도록 엄숙한 장면을 선택하여 인물을 조각상 처럼 묘사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 했음.
  • 이 시가의 북유럽에는 <예언자 다니엘과 이사야>를 조각한 클라우스 슬뤼테르, 제단화와 <아르놀피니의 약혼>으로 유명한 유화의 시조인 얀 반 에이크가 있음.
  • 이탈리아에서는 원근법과 신체에 대한 직접적 연구와 정확한 묘사를 통해 실제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다면 북유럽에서는 눈에보이는 형태를 점점더 치밀하고 정확하게 표현해 나감으로써 같은 목적을 성취하려고 했음.
  • 콘라드 비츠의 <제자들로 하여금 고기를 잡게하신 기적>은 성화의 배경을 친숙한 호수로 자세하게 표현한 새로운 시도임.
  • 아래는 브루넬레스키가 기베르티와 청동문 조각 컨테스트에 냈던 작품 (좌:기베르티, 우:브루넬레스키)



13 전통과 혁신 I  (15세기 후반 이탈리아)

  • 시민과 상인들이 주축이 된 도시가 발전하면서 장인들의 길드가 생기고 유파가 발생하고 수준의 차이도 발생함.
  • 유명 건축가 알베르티는 로마의 건축의 많은 부분을 도시의 건축물에 적용했으나 고딕 기반에 살짝 변형하여 입혔다고  할 수 있음.
  • 프라 안젤리코는 피렌체의 산 마르코 수도원에 많은 성화를 남겼음. 마사초가 고민한 원근법과 신체의 사실적 표현을 충분히 이해했으나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성스러움을 차분하게 전달함.
  • 우첼로는 원근법에 과하게 몰입한 경우이나 고촐리는 국제고딕을 적절하게 지켜나가며 적용함.
  • 만테냐는 현재 작품이 많이 남아있지 않아 아쉽지만 마사초의 진정한 계승자라 할 수 있음.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는 원근법과 단축법 뿐 아니라 빛을 잘 표현하여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꿈>을 그려냄.
  • 사실적 묘사에서 어려워진 구도의 문제에 대해 폴라이우올로는 다소 딱딱한 배치로 답했다면 보티첼리는 <비너스의 탄생>에서 어떤 부분에서는 14세기로 돌아가기로  결정함으로써 여신 탄생 순간의 아름다움을 잡아냈음.   

14 전통과 혁신 II (15세기 북유럽)

  •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건축이 시작되었지만 북유럽은 한세기가 넘도록 고딕이 지속되며 수직양식, 플랑부아양(불꽃보양) 양식 등이 나타남.
  • 반 에이크의 뒤를이어 로흐너는 국제양식에 르네상스적 요소를 추가하기 시작함
  • 웨이든은 구도의 문제를 좁은 배경의 설정으로 해결하여 폴라이우올로의 고민을 넘어섬
  • 목판화가 발달하여 많은 정보가 전달되기 시작하였으나 정밀성이 부족하여 회화에는 부적절함. 대안으로 동판화가 등장하여 이탈리아의 발전된 회화양식이 북유럽으로 확실히 전파됨.

15 조화의 달성 (세기초 : 토스카나와 로마)

  • 늘어난 군소 궁정들이 명예를 얻기위해 작품을 요청하고 유명한 예술가가 이를 허락하는 식의 권력의 변화가 일어남
  • 율리우스 2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새로 짓기 위해 브라만테를 고용하고 많은 돈이 필요해 면죄부를 판매했고 이는 종교 개혁의 빌미가 됨
  • 레오나르도는 이해받지 못한 천재였으며 매우 다양한 분야에 뛰어난 연구수준을 보였음.모나리자에 보이는 스푸마토 기법은 무미건조하고 딱딱하지 않게 실존하는 사람의 인상을 전함.
  •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에서 복잡한 자세를 거침없이 표현함.
  • 라파엘로는 성모자로 유명한데 더할나위없는 안정적인 구도와 인물의 아름다움을 보여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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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2019.01.20 22:40

혼돈기의 서양 미술 ( 6세기부터 11세기까지 : 유럽 )

500년이라는 긴 기간동안 분명하고 통일적인 양식이 생겨나지 않은 이유는 여러 민족과 계급들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있었던 뒤죽박죽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수도원과 수녀원에 보존돼 있던 고대 미술을 부활시키려 시도가 여러차례 있었지만 야만인으로 간주되는 북방 민족의 침입으로 무산되었다. 하지만 아프리카의 미술과도 흡사한 켈트족, 색슨족의 예술은 서유럽에 영향을 주었고, 동유럽의 비잔틴 미술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게 했다.  
이집트 인들은 대체로 그들이 존재한다고 '알았던 것'을 그렸고, 그리스 인들은 그들이 '본 것'을 그린 반면에 중세의 미술가들은 그들이 '느낀 것'을 그림 속에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던 것이다.  

이와같이 서유럽에서는 정확하게 보이는대로 표현하는 것보다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이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신도들에게 가르침을 주려는 성화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부분이었을 것이다. 노르만의 영국 정복 역사를 자세한 그림으로 표현한 무려 1080년 작품인 바이외 태피스트리도 이야기의 전달 이라는 점에서 동일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이 시기에는 특히 필사본의 그림이 발달했는데, 관심이 있다면 필사에 대한 역사를 풍부한 그림과 함께 다루고 있는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를 추천한다.  

전투적인 교회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은 육중한 기둥이 받쳐주는 아치가 특징이다. 불에 잘 타는 목조 지붕 대신 석재 지붕을 올리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는데, 엄청난 양의 석재로 튼튼한 기둥을 만들고 엇길리게 늑재를 겹친뒤 사이사이 세모난 구역을 가벼운 재료로 메우는 방법을 사용했다. 교회의 입구에는 성경의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조각을 하고 촛대와 세례반에도 마찬가지로 장식을 했다. 

12세기는 십자군의 시대로 비잔틴 미술과의 왕래가 많아 서유럽은 동방교회의 장엄하고 성스러운 성상을 모방하면서 동서가 서로 경쟁했다. 

그림에 언급된 우르술라라는 성인는 잉글랜드의 공주로 천여명의 처녀와 함께 성지 순례차 로마에 다녀오는 길에 훈족에게 순교 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공주 복장에 종려나무와 화살, 하얀 바탕에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교회의 승리 (13세기)

서유럽 특히 프랑스를 중심으로 고딕이라는 양식이 시작되었다. 기둥만으로 늑재를 받치고 나머지 부분은 창을 크게 만들어 벽을 가볍게 한다. 지지력을 높이기 위해 부벽을, 특별히 신랑(nave)의 상층부 지지를 위해 공중부벽을 설치하고 아치 대신 첨형아치를 사용해 높이를 높였다. 이전보다 더욱 화려해진 교회는 신도들에게 천국을 눈앞에 보여주는 효과를 주었다. 
조각에 있어서도 자연스럽고 개인적인 표현이 나타나서 그리스 로마 고전 예술을 다시 찾은 듯 보인다. 조각 발달의 영향으로 회화도 발전했으며, 자연스런 표현의 지오토로 이어진다. 그의 그림은 매우 사실적이며 감정 표현 또한 개인적이다. 피렌체 사람들은 그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하는데 예술가가 개인으로써 인식되는 것도 전에 없던 일이었다.  


귀족과 시민 (14세기)

그림과 관계는 없지만 초서(Chaucer)라는 작가가 설명이나 수식어 조차 없이 이 시대의 아이콘으로 계속 언급된다. 잉글랜드 작가인데 처음으로 라틴어나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로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 무렵 단테도 같은 이유로 이탈리아에서 유명하고 인기 있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모국어로 작품을 쓴 첫 작가라는 타이틀은 중요한 것 같다. 
시간이 갈수록 고닥은 더욱 화려한 스타일로 진화했고, 도시의 발달로 교회 뿐만이 아니라 궁 또는 관공서도 규모있게 건축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베네치아의 도제궁인데, 그러고보니 도제궁의 장식이 '베네시안 고딕'이니까 고딕의 일종 이었어! 

교회에서 쓰는 것 뿐아니라 개인 소유용 조각 작품이 등장하게 됨에따라 조금씩 규칙에서 자유로워지면서 한층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이 출현하게 된다. 

책에서 말하는 국제적 고딕 양식이 무얼까 하는 궁금증이 일어 위키검색을 해본다. 교황청을 중심으로 영향을 주고받고 여러 나라고 퍼져나가서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싶다. 

이 양식은 14세기 전반 아비뇽 법황청(法皇廳)에 시모네 마르티니가 초빙되어 전파케 된 시에나파(派)와 북방의 고딕 기법이 교류하여, 후기 고딕의 정교한 화려성이나 사실성과 시에나파의 정서 표현이나 설화성(說話性)이 혼합되었다. 아비뇽에 관계한 각지의 성직자에 의해 이 양식은 전유럽에 보급되어, 14세기로부터 15세기에 걸쳐 유행하였다. 랭브르 형제, 케른파의 로호나, 체코파의 화가들, 이탈리아의 우첼로, 안젤리코 등은 이 영향을 받은 화가들이다. 이 경향은 조각에도 파급되었다.

이런 변화가 더 가속되면서 드디어 르네상스가 도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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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페이스북에 2018년의 독서를 정리하면서 올린 글을 옮겨 둔 것입니다. 


작년 오늘 1년간 읽은 책을 정리했더라.

올해 내가 올린 글들을 보니 상반기에는 책소개를 주로 했고 하반기에는 여행, 그림, 발레 얘기만 주구장창...ㅋ. 무튼 다시 연말이 되었으니 간단히 올해 읽은 책 정리를 해본다. 
작년엔 백권돌파 목표로 130권을 넘겼는데, 올핸 117권으로 좀 저조?!하다. 하지만 이제는 신경을 안써도 이정도는 읽는구나 싶은 안정감과, 고전이면서 두꺼운 책을 많이 읽어냈다는 기쁨이 크다. 독서량은 오히려 더 늘었을 듯.

상반기엔 다양한 분야를 읽고 다양하게 감동받았고, 월리스의 <재밌다고들 하지만~>, 김소영 <진작 할 걸 그랬어>, 무케르지 <암>, 엘리자베스 워런 <싸울기회>, 김연수 <소설가의 일>을 소개했었다. 그 외에 새로운 삶의 형식을 소개하고 있는 <브로드컬리> 라는 잡지, <아무튼 서재>가 포함된 아무튼 시리즈도 신선하게 읽었다.

7월에 미술사 수업을 듣기 시작함과 더불어 나의 독서는 미술과 역사에 거의 몰빵 됐는데, 기초를 잡아준건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클릭 서양미술사>, <더 타임즈 세계사> 정도고, 알랭 드 보통 <영혼의 미술관>, 칼 세이건 <코스모스> (?이것도 과학의 역사!라며 여기 우겨넣음;;), 시오노 나나미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등도 괜찮았다. 자잘하게는 브루케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 진중권 <서양미술사>, <혼자읽는 세계미술사>, <통 유럽사> 등등등... 미술, 건축, 여행, 역사 관련 소소한 책을 읽었다. 강유원님이 추천하길래 읽어본 파노프스키 <고딕 건축과 스콜라 철학>은 너무 어려워서 절망하기도 했었고.

미술사반에서 특이하게 움베르토 에코 수업도 해서, <장미의 이름>, <프라하의 묘지>, <푸코의 진자>를 읽었다. 오래전에 시도했다 포기했었는데, 이제는 읽고 즐길! 수 있어서 기쁘다.

아는게 많아지고 연결고리가 생기면서 마구 퍼져나가는 느낌이 드는 한 해 인데, 그게 겉잡을 수 없는 수준이라는게 문제라면 문제다. 물론 읽을 때 즐겁긴 하지만, 무얼위해 읽는가? 하는 질문이 종종 뇌리에 박힌다. 

내년에는 권수는 줄이면서 읽었던 책 중에 다시 읽어야지 하는 책, 당연히 읽었어야지 싶은데 어째서인지 계속해서 밀리고 있는 책들을 정해서 월에 한 권씩은 챙겨서 보려고 한다.


근데 이런거 누가 궁금해 한다구 SNS에 쓰고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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