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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회 관람 후기

by csk 2019. 5. 20.

감동 받은 작품 네 점에 대한 느낌을 적어본다. 

<더 큰 첨벙> 데이비드 호크니

첫 번째로 만난 대형 작품이다. 따뜻하고 밝은 색감을 기대했는데, 아니었다. 하늘색에 가까운 풀장의 물과 분홍이 감도는 샌드 베이지 바닥 그리고 쨍한 하늘... 각각의 색상은 분명 밝은데 느낌은 이렇게 서늘할 수가 없다. '이건뭐지?' 싶어 한동안 그림앞을 떠날수가 없었다.  

호크니는 영국 출신이지만 캘리포니아의 찬란한 태양에 매료돼 정착했다고 한다. 그림에서 한 발 물러난 이방인으로써의 고독이 느껴진다. 찬란한 태양을 통 유리 밖에 두고 서늘한 에어콘 바람에 한기를 느끼는 그. 화가의 위치는 거기인 것이다. 투박하게 말끔한 아크릴 물감이 주는 색(으로 채워진)면 효과로 시간은 멈추고 소리는 빨려들어간 듯 모든 것이 멈춘 순간, 홀로 움직이는 물보라 마져 소리조차 없다. 

 

 

<클라크 부부와 퍼시> 데이비드 호크니

두 번째로 감동을 준 그림인데, 조금 무서웠다. 부부의 표정과 자세가 상당히 인위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함께 전시된 사전작업 스케치에서는 부인의 손 위치가 조금더 아래로 내려와 있고, 남편의 오른팔도 앞으로 내려와 훨씬 자연스러웠다. 부인의 한껏 올라간 손의 위치와 남편의 제껴진 어깨와 담배를 쥔 손이 화가를 외부인으로써 지나치리만큼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화가가 떠나고 이들이 돌아서며 테라스를 바라보는 순간의 얼굴은 어떤 표정일까 상상하게 되는건 나 뿐일까?

특히 부인의 표정이 슬픔에 마취된 듯, 영혼이 없는 듯 숨막히도록 어둡다. 이 부부에게 초대돼 여기있다면 함께 차만 마셔도 체할것 같다는 상상. 그 와중에 아름다운 꽃과 살가운 노랑의 책, 민트색 장신구가 있지만 이 모든 소품에는 생동감이 없다. 생물인 고양이마져 등을 돌린채 도자기와 같은  뒤태만 보여주어 한 몫 보탠다. 부인의 얼굴 위치 옆 벽에 걸린 세련된 액자에서는 금색의 날카로운 테두리에서 나오는 빛이 폭풍전의 고요함, 폭발 직전의 긴장상태를 암시한다. 

그럼에도 정말 눈물나게 아름다운 색감이다. 푸른빛과 베이지가 섞인 벽면과 민트, 노랑의 소품, 부부의 세련된 옷 색깔까지 아름답지 않은것이 없다! 열린 창밖의 밝은 햇살을 품은 공기의 색감은 또 어떻고... 슬프고 처연한데 이렇게 아름답게 그리다니, 엉엉 울고 싶은것을 일행이 없어서 억지로 참았다. 

 

<나의 부모님> 데이비드 호크니

역시 감동적이었던 세 번째 작품은 화가의 부모님을 담은 것이다. 곰브리치 책에 보면 어머니의 사진으로 만든 작품도 있던데, 어머니와 조금 더 친밀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어머니는 그를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아버지는 무릎 위 책으로 시선을 떨구고 있다. 실제 그림을 자세히 보면 어머니의 눈빛에는 애정과 더불어 공허가 보인다. 나이가 들어 삶의 통제권과 기억마져 잃어가는 노인에게서 볼 수 있는 그런 공허 말이다. 아직은 아들을 인지하고 애정을 보내지만 그는 이미 그녀의 기억 속 아들이 아니다. 아버지는 아예 세상에 대한 기억의 고리를 잃고 다른 세상 속에서 자신과의 연결을 찾아내고자 애쓰고 있다. 잔뜩 구부린 그의 어깨와 들어올린 발꿈치가 그 일에 얼마나 애쓰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두 분 모두 단정한 차림으로 단정히 앉아 계시지만 그들의 삶은 점점 비워지고 있고 멀지않은 미래에 완전히 비워질 것이다. 

그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화가는 아름다운 튜울립을 두 분께 선물하고 풋풋한 연두색 서랍장에 보라색 카펫을 깔고 부드러운 색감의 나무 의자에 앉혀 드린다.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정물화가 샤르댕의 책이 놓여있는건 이 작품이 어떤 의미에서는 정물화임을 말하려는 의도가 아닐까. 

 

<2017년 12월 스튜디오에서> 데이비드 호크니

전시 마지막에 만난 그의 스튜디오를 형상화한 이 작품을 보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왠지 그가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이해할 수 있을것만 같다. 그는 소수자였고 외부인이었고 사람들의 슬픔와 고독을 절절히 느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세상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래서 손에 닿을 듯 닿지않는 햇살이라도 변치 않고 있어주길 바랬다. 그 조각조각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모아 성을 만들고 그 안에 그는 산다. 피터팬 처럼 말이다. 

 

 

가야지 하고 있다가 막상 귀찮아져서 '난 현대미술 별로잖아' 하며 또 미루려고 했다. 개관 30분 전인데도 사람이 많던데, 얼떨결에 2등으로 관람해서 나름 쾌적하게 보긴 했다. 나올때 보니 첫 인파가 빠지는 11시쯤 오는것도 방법일것 같더라. 

소개한 첫 작품인 더 큰 첨벙을 보자마자 뭔가 불길하더니, 나의 부모님과 클라크 부부를 볼때는 울음을 참느라 힘들었다. 피카소와 고흐가 떠오르는 호텔 중정을 그린 작품과 왠지 모르게 친근한 그랜드 캐니언 작품들도 좋더라. 마지막 스튜디오 작품 앞에서 나는 할아버지를 마음으로 안아드렸다. '잘 사셨어요. 저에게 용기를 주셨어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