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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곰브리치 서양 미술사 - 20~25장

by csk 2019. 3. 24.

20 자연의 거울 (17세기 네덜란드)

  • 종교개혁후 개신교 지역인 네덜란드 북부에서는 성화금지의 풍조와 검약한 생활양식에 따라 화려한 바로크가 도입되지 않았고, 대신 초상화와 풍경화가 발달함
  • 프란스 할스는 네덜란드 최초의 초상화 거장으로 부드러운 분위기의 단체화 및 빠른시간에 자연스러운 포즈로 개인의 특징을 잘 표현한 초상화를 남김
  • 얀 반 호이엔은 클로드 로랭에 비해 실질적인 풍경의 '그림같은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줌
  • 램브란트는 마무리는 화가가 결정하는 것이라며 거친 붓칠로 두는 지역도 있었으며, 어둠을 사용하였으나 강조하기 보다는 주제를 부드럽게 드러내는데 주력함. 인생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의 시선은 초상화 화가로써 성공적인 삶을 살게 했으나 말년에는 가난하게 삶을 마침
  • 발렘 칼프는 정물도 어엿한 그림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줌
  • 베르메르는 작품수도 적고 인생 면에서 그리 알려진 바가 없으나 부드러움과 세밀함을 통해 일상의 순간을 특별한 아름다움으로 바라보게 하는 놀라운 기술을 가짐

21 권력과 영광의 예술 I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이탈리아)  

  • 보로미니의 교회는 사각 탑위에 원형2층이 올라가는 등 자유로운 시도의 바로크 양식을 보여줌
  • 바로크 교회는 신도들을 압도할 아름다움을 제공하기 위해 건축가, 화가, 조각가를 소집했음
  • 교회의 화려한 천장화 등의 바로크 작품은 해당 장소를 벗어나면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에 교회안에서의 바로크가 완벽히 발전한 후에는 독립적인 예술로 발전하지 못했음
  • 베르니니는 순간의 표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데 능했고 <성 테레사의 환희>에서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얼굴 표정의 격렬함을 보여주었고, 고전적 흘러내리는 옷주름이 아닌 펄펄 날리는 모습으로 흥분과 움직임의 효과를 강조했음
  • 프란체스코 구아르디가 표현한 베네치아 풍경은 여행의 기념물로 사용되었고 점으로 표현한 곤돌라 사공은 이후의 (인상주의) 미술에 영향을 주게 되었음

22 권력과 영광의 예술 II (17세기 말과 18세기 초 :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 17세기 루이14세등 군주들은 자신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 화려한 건축물을 세웠고 그 대표가 베르사이유 궁전이나 이 궁전이 바로크 양식인 것은 그 장식적인 세부 때문이라기 보다는 거대한 규모 때문임
  • 멜크 수도원도 천국의 영광을 맛보게 해주려는 의도로 매우 화려하게 장식된 바로크 대표 건축물임
  • 앙투완 바토는 바로크와 로코코를 잇는 대표 화가이나 꿈과같은 일상의 완벽한 순간을 상상하고 이 덧없음의 슬픔이 묻어있게 표현한 풍경화로 유명함



23 이성의 시대 (18세기 : 영국과 프랑스)

  • 영국은 취향의 척도가 또한 이성의 척도였기때문에 바로크식 장식에 나타난 공상의 비약에 반대하여 절제된 형태로 건축했음
  • 풍속과가 호가스는 외국의 화가들에게만 의뢰하는 영국인들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음
  • 레이놀즈는 로마와 이탈리아 고전을 공부하고 체계를 세우는 화가로 영국 왕립미술원 초대 원장이었고 게인스버러는 특별히 고전을 배운적이 없는 타고난 화가였음
  • 장 밥티스트 시메옹 샤르뎅은 영국인의 일상을 그린 화가로 베르메르와 유사한 느낌이 있음
  • 프랑스에서는 장 앙투안 우동이 조각가로써 인기였으며 볼테르의 흉상으로 유명함

24 전통의 단절 (18세기 말과 19시기 초 : 영국 미국 및 프랑스)

  • 사람들이 양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기 시작했고 다양한 건축 양식이 동시대에 시도 되었으며 고대 로마의 발굴 및 연국가 활성화 되자 고전에 충실하려는 신고전주의가 각광을 받게됨
  • 아카데미 미술이 중심이되어 많은 규칙과 가르침이 전해졌으나 이에대한 반작용도 동시에 발생하게 됨
  • 코플리는 국왕에게 대항하는 국회를, 다비드는 암살당한 혁명가 마라를 그리는 등 당시의 사건을 암시하거나 대상으로 하는 그림이 등장하기 시작함
  • 스페인의 고야는 개인적 환상을 그림위에 펼치는 자유를 누렸고, 이는 영국의 윌리엄 블레이크에게도 이어짐
  • 터너는 클로드 로랭의 풍경화를 일생의 목표로 삼았으나 그 이상을 달성하였고 목표를 가지지않고 진실만을 추구한 컨스터블은 당시의 규칙들을 무시한 작품을 그렸음
  • 황량한 산의 모습을 동양화와도 같이 표현한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당대에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터너와 컨스터블의 성취에 이르지 못했음 

25 끝없는 변혁 (19세기)

  • 런던 국회의사당은 시민의 자유가 중세에 쟁취되었다는 이유로 고딕풍으로 재건됨
  • 유럽 미술의 중심지는 15세기 피렌체 17세기 로마를 거쳐 19세기에는 파리에 안착함
  • 앵그르는 고전파로써 매끈한 아름다움을 표현했으나 외젠 들라크루아는 역동적이고 화려한 색채를 통해 낭만주의를 이끌었음
  • 컨스터블의 지도를 받은 바르비종파는 시골 농부의 삶을 표현했으며 대표 인물은 밀레임
  • 사실주의의 문을 연 쿠르베는 일체의 가식을 거부하고 진실을 표현하려 함
  • 영국에서는 라파엘로로 부터 시작된 '이상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 그 이전의 '하느님께 정직했던' 장인들의 예술로 돌아가려는 라파엘전파가 등장하였으나 순수해 지고자한 그들의 노력은 자기모순적이어서 성공하지 못함
  • 마네는 인상파를 자처하진 않았으나 눈에 보이는 대로 외광 효과를 표현한 첫 화가임
  • 모네는 소재 앞에서만 그림을 그리고자 했고 르노와르와 함께 빛의 효과를 중요시 했으며 가장 인상주의적이었던 화가는 피사로 였음 
  • 인상주의를 이끈 역사적 사실은 사진 기술의 발달과 일본의 채색 목판화 (우키요에) 였음
  • 드가는 우키요에의 영향으로 파격적인 구도를 선보였으며 다양한 포즈의 발레하는 소녀들을 즐겨 그렸음
  • 미국에서 온 휘슬러는 터너와 라파엘전파에 호의적이었던 유명 비평가 러스킨과 격돌하여 예술적 감각만이 인생에서 진지하게 논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 '심미주의 운동'의 지도적 인물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