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술사

리움 미술관 관람 후기

by csk 2019. 6. 2.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리움의 콜렉션이 눈에 띄었다.

첫관람이었던 나에게 말을 걸어온 로스코와 자코메티의 작품에 대한 감상을 적어본다. 

마크 로스코 <무제> 

현대미술 전시 1층(가운데층)에 있는 작품이다. 이 그림을 보러 간건데 한참을 서있어도 아무 감정이 일어나지 않았다. 억지로 감동을 쥐어짤 이유는 없지만 못내 아쉬운 맘이 한가득인데, 하필 그림 옆에서 신입 직원을 교육하고 있는 통에 영 집중이 되질 않았다. 다 둘러보고 다시 돌아왔는데도 계속되고 있길래, 참다못해 이야기를 했는데 목소리만 줄여주더라. 절대 그 위치를 벗어나서는 안되는 규칙이라도 있는것처럼...

마크 로스코 <무제> 리움 홈페이지에서 가져왔는데, 어째 내가 본 작품인 아래 사진과는 좀 다르네.

한 점 밖에 없군 하며 돌아서려던 순간 불교미술전 사이에서 발견한 두번째 작품이다. 

그의 절망은 무겁지 않게 시작되어, 습관과도 같은 오래된 삶의 의지 위로 나풀나풀 떠오른다. 하지만 이내 모두 뒤덮고 가장자리만 남겨둔다. 모든 것이 끝나기 1초전 내려놓기 직전의 찰나를 그는 표현한 듯 하다. 소리없이 모든 것을 먹어버리는 블랙이 위험하다고 그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아니 그를 도와달라는 외침이었을까?  

불교 미술 파트에 로스코와 자코메티가 불상들과 함께 나란히 전시돼있다. 실제론 많이 어두워서 사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인데 작품들과 잘 어울린다.

큐레이터가 말하고자 하는 종교적 흐름이 무엇인지는 알것같다. 하지만 나는 자살 직전 로스코의 절망적인 블랙과 자코메티의 처절한 고독의 인간상이 해탈을 말하는 불상 사이에 놓여있는것이 꽤 어색하게 느껴졌다. 평화로운 광장의 군인행렬같은 생경함.

사진사의 위치 언저리가 로스코의 작품이 유리 조명 반사도 없이 보이고 고개만 돌리면 자코메티도 볼 수 있는 명당이다. 나도 그곳에서 한동안 발길을 떼지 못하고 왼쪽과 오른쪽만 번갈아 바라 보았다. 두 거장의 무거운 메시지를 읽으면 읽을수록 땅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만 같아 힘들게 발걸음을 떼고 일상으로 탈출한다. 가위눌림에서 벗어난 기분.   

알베르토 자코메티 <작업실에 앉아있는 디에고>

이탈리아 여행에서 만났던 자코메티 작품도 참 강렬했었던 기억이난다. 

로봇같은 인상의 남자가 의자에 앉아있다. 다리를 꼬고 있군 하며 다리를 보다가 다시 고개를 드는 순간 1미터는 더 멀어진 그의 얼굴을 보며 깜짝 놀란다. 너와 나는 이만큼의 거리라는 듯이 그는 멀어져 간다. 다리를 보다 머리를 보면 또 다시 1미터씩, 한 번도 아니고 반복적으로 그는 멀어진다. 상대를 아는 것이, 진심으로 내면을 이해하는 수준 따윈 집어치우고 그의 형태라도 파악하는것이 가능이냐 하냐고 나에게 다그친다. 

자코메티 <디에고 잔상>

고통과 좌절로 오롯이 알맹이만 남은 인간을 표현했기에 그의 인물과 무릎꿇은 자세는 너무도 잘 어울린다.  

자코메티 <거대한 여인>

여인이라고는 하지만 유방은 자세히 보아야 알 수 있다. 성이라는 것이 삶의 무게 앞에서는 사치일 뿐이고 특히 여성의 몸은 풍요와 생명의 상징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뼈보다도 가늘어진 그녀의 몸이 인생이 무어냐고 묻고 있다. 

사실 전시실에서는 그녀의 그림자에 눈물이났다. 이 작품이 만들어졌을때도 이렇게 처연한 그림자가 있었겠지, 그 당시와 지금과 같은 것은 - 그러니까 작가가 표현하고자 한 것은 - 저 그림자가 아닐까 하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다.     

 

 

토요일 오전에 들어가서 샌드위치 사먹은 시간까지 3시간 반이 넘도록 머물렀다. 작품도 좋았지만 공간도 참 좋았다. 담쟁이 덩굴의 검은 돌 벽면의 아름다움이 종종 작품보다 더 눈길을 끌었다. 한국미술도 공부해서 또 가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