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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

곰브리치 서양 미술사 - 1~3장

by csk 2019. 1. 6.

1. 신비에 싸인 기원 (선사 및 원시 부족들 : 고대 아메리카)

동굴벽화에 그려진 동물들은 사냥 연습이나, 사냥의 성공을 비는 의례에 사용되었고, 다분히 주술적 목적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책엔 언급되지 않았지만 최초의 조각이라 할 수 있는 뮐렌 도르프의 비너스 또한 출산에 유리한 조건을 가진 여성의 몸을 표현함으로써 많은 아이를 낳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영국에는 아직도 '가이 포크스 데이'가 있어서 그 사람을 본뜬 인형을 만들어 끌고 다니다가 태운다고 하는데, 이것도 인형에 해코지를 하면 대상자도 아프게 된다는 주술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의 인형은 주술적 예술의 예 인 것이고. 
자주 봐오던 anonymous 가면이 '가이 포크스'라는 역사적 인물 인 줄, 부끄럽지만 오늘에서야 알았다. 신교 확장을 막고 카톨릭 여왕을 세우기 위해 영국 국회의사당 지하에 폭약을 설치하다가 처형 당한 인물인데, 그의 얼굴이 정부 반대 시위대의 단골 가면이 되었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한 일인것 같다.  

미술이 의례에서 한 축 이라면 그 의례가 효과가 있었느냐 만이 중요하기 때문에 정해진 색상과 정해진 모양으로 그려지는 것이 중요했고, 개인의 창의성이나 미의 추구가 끼어들 여지는 당연히 없었다. 하지만 미술가의 기질은 단순한 기술이라고 해도 꾸준하게 발전 시켜가며 변형된 디테일을 통해서 조금씩 드러나게 마련이다. 


2. 영원을 위한 미술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크레타)

이집트 미술은 죽은 자를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배자가 죽으면 하인과 노예들을 함께 묻던 풍습에, 미술이 대체제를 제공하게 된 것은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이집트 미술이라고 하면 옆면의 얼굴과 정면의 몸통, 다시 옆면인 다리가 떠오르는데 거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시 되었던 것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완전함이었다. 모든 것을 가능한 한 아주 분명하게 그리고 영원히 보존하는 것이 미술가의 과업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처음부터 어떤 우연한 각도에서 보이는 대로의 자연의 모습을 그리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림에 들어가야 할 모든것이 극명하게 나타나도록 보장해주는 엄격한 규칙에 따라서 기억을 더듬어 그렸다.   

단축법에 의해 한쪽 팔이 짧게 그려진 하인이 주인에게 음식을 나를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얼굴이 옆면이더라도 어깨는 정면으로 그려 양팔 모두 완전한 길이로 나타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켜지는 규칙들을 양식(style)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엄숙한 이집트 미술도 다소 자유로운 시절이 있었는데, 크레타의 영향을 받은 아크나톤, 투탕카멘 시절이다. 이 시기는 말하자면 중세에서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듯한 변화를 보여준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으로 외부와의 교류가 많았고, 종교적으로도 다신교에서 태양신에 집중하는 식의 변화가 있었던 시기라고 하니, 역시 미술의 변화는 사회/종교적 변화와 밀접한 것이다. 


3. 위대한 각성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5세기까지 : 그리스) 

역사의 시작이라하면 으레 그리스 부터 떠오르지만, 미케네에서 출토된 단검만 보아도 이미 상당한 수준의 문화가 존재했던것을 알 수 있다.  

많은 민족들이 지중해로 몰려왔는데 그 중 한 민족이 그리스 종족이었고 이들은 이집트와 크레타의 문화를 받아 서툴게 출발했다. 하나의 아름다운 형태에서 독특한 새로운 미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서투르게 보이는 시도를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집트의 방법이 여러가지 면에서 더 안전했으며 그리스 미술가들의 실험은 실패할 때가 많았다. 미소가 어색한 웃음으로 보이기도 하고 덜 굳어보이려고 만든 자세가 가식적인 인상을 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당황하거나 겁을 먹지는 않았다. 그들은 이제 되돌아 갈 수 없는 길을 출발한 것이다. 

그리스 미술가들은 가능한 인물의 윤곽을 뚜렷하게 표현하려는 이집트인의 마음을 가지면서도 새롭게 알게된 인체에 대한 지식을 함께 녹이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미술은 조금더 낫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뚜벅뚜벅 발전하는가 보다. 



얼마전 여행했던 로마 파에스툼에서 다소 지루하게 보았던 적회식, 흑회식 토기들이 이집트 미술과 비교할때 얼마나 자유로운 표현인지, 게다가 거의 처음으로 '감정 표현'까지 들어갔다니 놀랍다. 알고 봤으면 훨씬 와닿았을텐데 아쉽다. 하지만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더 많은 걸 알고 볼 수 있는 그때란, 동시에 더더 많은 걸 알기 전일 수 밖에 없을 테니까. 


이번에 이 책을 읽고 나서의 여행은 전보다 훨씬 풍성하길 기도하면서...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