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의 세계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 그리스와 그리스의 세계)
그리스가 뛰어난 문화 수준을 가지게 된 것은 도시국가 체제여서 경쟁과 교류를 활발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그 당시 기술로 오갈 수 있는 적당한 거리의 바다인 지중해와 다양한 문화의 국가들도 한 몫했을 것이다. 그결과 지금까지도 미의 역사에서 당당히 첫장을 차지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 성장과 발전을 위한 기본은 교류다.
그리스 신전의 원주는 단순하고 강한 인상의 도리아식에서, 조금은 더 우아한 이오니아식으로, 그리고 헬레니즘 문화의 화려함을 반영한 코린트 식으로 발전했다. 원주의 스타일이 곧 건축물의 스타일과도 일치한다. 당시 융성했던 도시인 페르가몬의 제우스 제단은 화려함의 정수를 보여준다. 하지만 이 신전이 페르가몬이 아닌 베를린에 있다는 점은 숱하게 일어난 강대국의 문화 유산 탈취의 또하나의 사례이다.
그토록 오래전인 기원전 4세기의 조각가로 이름이 남은 프락시텔레스는 얼마나 훌륭한 조각가 였을까. 많은 시인들이 찬양했다는 아프로디테 조각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본다. 르세상스 조각가 베르니니의 작품에서 감동을 받고 보니 조각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 프락시텔레스의 작품은 르네상스 시기의 것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완벽하고 균형감이 있다. 이집트 미술의 규칙이 다소 보이기는 하지만, 인체의 아름다움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경지에 이르렀고, 드디어 얼굴(초상)에도 '영혼의 활동'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프락시탈레스의 다른 작품들을 검색해 보았다. 책에 소개된것 말고도 4,5점의 작품이 있는것 같다. 그 중 로마에 있는 프락시탈레스의 <카피톨리노의 비너스>다. 아마도 지난 가을 여행에서 보았을 텐데, 너무 많은 작품을 스친 까닭에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콘트라 포스토에 베누스 푸티카의 손까지 적용된 아름다운 여성의 몸을 통해 그리스 미의 전형을 보여준다.
세계의 정복자들 (기원후 1세기부터 4세기까지 : 로마, 불교, 유태교 및 기독교 미술)
기로에 선 미술 (5세기에서 13세기까지 : 로마와 비잔티움)
313년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인정하자 당장 예배를 드릴 장소가 필요해졌고, 고대 회당인 바실리카 형태를 차용 해 교회를 지었다. 교회 내부를 꾸미기위해 서로마에서는 일찍부터 성화를 허용했고, 동로마에서는 오래도록 성상이 금지되었다가 엄격한 규칙하에 허용되었다. 따라서 비잔틴에서 성모의 참된 성상 즉 이콘으로 인정될 수 있는것은 어느정도 틀에박힌 것일 수 밖에 없었다.
교회가 명확성을 강조했기 때문에 모든 사물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명확성을 중시했던 이집트의 관념이 되살아났다.
비잔틴의 모자이크를 단순하고 딱딱하고 엄격하다고 말하지만 작년에 방문한 라벤나에서 받은 인상은 따뜻하면서도 부드럽고 또렷하게 아름다운 것이었다. 이후에 본 많은 르네상스의 그림보다도 가장 마음에 남았을 정도였으니까.
동방의 미술 (2세기에서 13세기까지 : 이슬람과 중국)
이슬람 교는 기독교보다 성상 문제에 대해 더 엄격했기 때문에 아라베스크 문양이라 불리는 장식 무늬가 발전하게 되었다. 필사본에 삽화가 포함돼 있으나 사실적 묘사와는 꽤 거리가 있다. 중국에서는 자연을 표현하는 데 몰두 해 있었고, 화가가 시인과 동등한 위치로 존중받았다. 일본의 판화도 독특한 모습으로 발전하였는데 18세기에 우키요에 장르가 특히 유럽에 큰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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